경주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둘러보기 (+경주 가볼만한곳)

 

이번 포스팅은 경주 가볼만한곳으로 추천하는 경주 양동마을 이야기이다. 이곳은 대략 500년 전부터 양반들이 모여 살았던 집성촌으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경주 양동마을에는 아직까지도 마을의 후손들이 기와집 뿐 아니라 초가집 등에 거주하고 있었다. 실제로 6.25 전쟁 이전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군락을 형성하며 거주했다고 한다.

 

 

경주 양동마을은 2010년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마을로써 조선시대의 전통문화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경주 가볼만한곳으로 이곳을 찾는다면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둘러보는 편이 좋다. 9시 30분 부터 30분 간격으로 진행되니 왠만하면 가이드투어를 받아보길 바란다.

 

 

6시 방향의 해설자의 집부터 시작하여 양동마을을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빨간 글씨로 강조된 곳은 고택을 안쪽까지 둘러볼 수 있는 메인 공간이다. 

 

 

가장 먼저 1909년에 지어진 양동초등학교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현재는 학급 인원수가 71명에 불과하지만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700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인원을 자랑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지나니 경주 양동 마을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초가집과 기와집이 어우러져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속 한 장면에 들어와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 보이는 마을의 모습은 채 1/3 밖에 되지 않을만큼 뒤쪽 공간도 방대하다. 언덕 뒷편에도 수많은 고택들이 산적해 있으므로 구석구석 돌아본다면 최소 두시간 정도는 잡고 걸어야 할 듯 하다.

 

 

경주 양동마을 곳곳에는 내 키만한 접시꽃이 피어있어 마치 관광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 했다. 해설자분과 다른 가족팀과 함께 이곳저곳 둘러보기 시작했다.

 

해설을 해주셨던분은 하루에도 4~5번씩 관광객을 대상으로 양동마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여러명의 해설자가 대기하고 있으며 요일 중에는 월요일이 비교적 한가하다 한다. 

 

 

이렇게 기와집 뿐 아니라 초가집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기와집은 그렇다쳐도 초가집에 아직까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경주 양동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기에 함부로 리모델링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그대로의 생활방식에 익숙한 어르신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오르막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금세 마을을 한눈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오게 된다. 오르막길이 그리 가파르지 않아 쉽게 걸어갈 수 있었다.

 

 

오르막길을 올라오니 이렇게 경주 양동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저 멀리로는 경주 시내까지 조망할 수 있는데, 실제로 양반들이 이곳에 올라 소작농들이 일하는 모습을 체크했다고 한다.

 

 

경주 양동마을을 풍수지리학적으로 상당히 길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에 소과 뿐 아니라 대과에 합격한 고위직 관료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당시 대학교의 역할을 수행하였던 옥산서원이 이곳에 있는데, 당시 이곳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률이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초가삼간을 다 태운다는 말의 유례가 되는 초가삼간이 바로 위의 형태라고 한다. 세 칸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집을 이르는 말인데 의외로 마당이 있어 의아했다ㅎㅎ

 

 

경주 가볼만한곳으로 손꼽히는 곳 답게 초가집/기와집 만큼이나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해서 사진을 찍는 재미가 가득했다. 중간중간에는 친절한 안내판들이 있어 길을 헤맬 걱정을 덜 수 있기도 했다.

 

 

경주 양동마을의 한켠에는 이렇게 돌담이 높게 쌓여져 있기도 했다. 조선시대 당시 양반과 노비의 넘볼 수 없는 신분의 격차를 보여주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조선시대의 서민들의 삶을 떠올리면 구한말 외국인이 사진으로 남겼다는 무너져 내려가는 초가집이 첫번째로 떠오른다. 그러한 모습이 일상일 줄 알았는데 이곳에 와보니 그 사진의 삶이 전부가 아니었다.

 

 

조선시대는 계급사회였기에 양반과 노비의 신분의 격차는 컸겠으나, 삶의 터전은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았다. 길거리에 핀 해바라기와 접시꽃 만큼이나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돌이켜보면 일반 아파트와 임대주택을 단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듯 하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송첨 종택에서는 안쪽까지 들어가볼 수 있었다. 마침 이곳에 거주하는 아주머니께서 차를 세워두고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를 보면서 '어서오세요~' 라고 건네준 인삿말이 묘하게 느껴졌다.

 

 

건물 내부에는 뜬금없이 담이 있어 의아했다. 해설사님이 이러한 점을 짚어주셨는데, 이는 남자와 여자의 방을 구분해주는 담이라고 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조선시대 남녀차별 모습을 보여주는 흔적인 듯 하다.

 

 

경주 손씨의 큰 종가로써 '忍 (참을 인)'을 100번 쓰며 인내심을 기른다는 '서백당' 현판이 걸려있었다. 500년이 넘는 향나무 뿐 아니라 사랑채 뒷편의 경치도 남달랐다.

 

이곳에서는 시대를 관통하는 현인 세명이 배출될 것이라는 예언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현재까지 두명의 위인이 태어났고 한명은 후대에 태어날 것이라는데 과연 누구일지..ㅎㅎ

 

 

고택을 배경으로 어머니의 기념사진을 남겨드렸다. 아쉽게도 성이 '구'씨 이므로 전생에 이곳과는 연이 없었던것으로..

 

 

경주 가볼만한곳을 알아보고 있다면 이곳 경주 양동마을에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인만큼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