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 - 김연수 (feat : 나의 젊음은 푸르다)

이 책은 작가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단순히 서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젊음, 시인, 일본, 문학 등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것들에 대한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책을 읽기 전 '여행할 권리' 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여행을 예찬하겠거니 하며 나의 여행기를 되돌아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작가의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레몬향기가 맡고 싶다

이상 이라는 시인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처음 알게 되었다. 언어 영역의 공부를 위해서 문제집을 풀 때면 이상의 거울이 자주 등장하여 그 당시에는 외우다시피 했다. 고등학생들에게 시라는 존재는 쪼개고 쪼개어 해부해야 하는 존재이다. 이상의 시를 부수어서 읽고 있는데 국어 선생님이 말씀해주시는 이상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알려진 바처럼 선생님께서는 이상에게 천재 시인이라는 칭호를 붙이면서 초현실적인 이상의 시에 대하여, 그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셨다.

 

이상은 왜 천재인가? 이상의 시나 소설을 읽고 있자면 피카소나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화가의 작품이 떠오른다. 한 마디로 난해하다. 이렇듯 난해한 작품을 쓰면 천재 시인이 되는 것인가? 그러나 이상의 시를 계속 읽고 곱씹어 보면 시인이 휘갈겨 쓴 듯한 작품 속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지 찾는 재미가 있다. 이렇듯 내가 이상에 대해 접했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여행할 권리 중 뒷부분에 있는 당신들은 천국과 지옥의 접경으로 여행을 하고 라는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 깊었다.

 

천국과 지옥의 접경으로

이상이 몇 시에 죽었는지, 그가 마지막 남긴 유언이 레몬이었는지 멜론이었는지에 대하여 천국과 지옥의 접경을 여행하지 못한 남겨진 이들에게는 중요한 논란거리이다. 그만큼 이상의 죽음은 문학계에 큰 파장이었기 때문이다. 이상에게 프랑스 파리와 일본 토오꼬오의 존재는 이상적인 곳이자 죽음의 장소이다. 사람들은 일탈을 꿈꾼다. 현실 세계에서 자신을 옥죄는 갖가지 일들,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는 고된 일상에서 도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돈을 모아 훌쩍 여행을 떠나곤 한다.

 

하지만 술과 여행은 진정한 도피처가 되지 못한다.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 현실과 가장 멀리 떨어져있으면서 나 자신이 훨훨 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는 장소가 바로 이상에게는 토오꼬오였다. 이상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끊은 것은 아니지만 레몬이 먹고 싶다고 말하면서 프랑스의 빵을 원했던 것은 그가 처한 현실을 부정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토오꼬오에 가지 않을 것이다. 지루하고 팍팍한 일상 속에서 레몬향기 대신에 슈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조촐한 계절 과일을 즐기면서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 천국과 지옥의 접경은 이상일뿐이다.

 

푸르미의 젊음과 같아라

서로 나이는 다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고 밤비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으며 내게도 젊은 날이 있었다. 그건 누구나 다 겪는 일 아니냐? 누구나 사랑을 하지 않느냐? 노르웨이의 숲은 바로 내 얘기였다. 여행할 권리를 읽기 전에 읽은 책이 상실의 시대 라는 책이었다. 상실의 시대의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 이니 푸르미가 푸르른 청춘을 즐기던 시절 읽었던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책을 나 또한 읽은 것이다. 푸르미가 노르웨이의 숲을 2005년에 읽고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얘기였다고 말했다. 나는 노르웨이의 숲을 2019년에 읽고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의 얘기였다고 말한다.

 

서양인과 동양인이라는 구분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국가의 민족이라는 분류체계에 있어서 세계는 수많은 사람들로 구분 지어진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 사람의 국적이나 문화가 무엇인지보다는 누구나 젊은 날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외국의 서적을 읽어도 진한 감동을 받을 수 있고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것이다.

 


 

며칠 전 토크쇼에서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이야기에 잠시 주의를 기울인 바가 있다. 그런 토크쇼에서는 보통 우리나라에 와서 깜짝 놀랐던 문화적인 차이를 다룬다. 그들이 깜짝 놀랐던 문화적 차이는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젊은 시절과 나의 젊은 시절이 깜짝 놀랄 만큼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푸르미의 젊음과 같아라. 나의 젊음은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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