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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드보통 (feat : 사랑 그 진부한 얘기에 대하여)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드보통 (feat : 사랑 그 진부한 얘기에 대하여)

하루를 시작함과 동시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가? 아침 드라마의 사랑 이야기부터 지하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에 대한 가사, 연인과의 통화에서 들리는 사랑이라는 단어, 잠들기 전 사랑에 관련한 드라마를 진지하게 감상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사실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논하는 것을 진부하고 코웃음 치게 만드는 무엇이라고 여겼다. 사랑은 이렇고 저렇고를 논하는 이는 자신이 지금껏 해왔던 사랑을 바탕으로 일반화시켜 다른 사람을 미혹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웃음 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공감을 자아내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 또한 '사랑'이 아닌가 싶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기 이전에 내가 읽은 그의 첫 저서는 '우리는 사랑일까'였다. 사랑이 세상의 전부인 여자와 사랑은 인테리어에 불과한 남자와의 연애 이야기였는데, 부분적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도식화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작가의 철학적인 생각이 곳곳에 배어있었기에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알랭 드 보통의 저서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여행의 기술',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을 읽게 되었고,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다. 이 책을 읽고 크게 공감했던 부분은 사랑의 시작과 끝에 대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
가능한 모든 감정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사랑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 감정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그녀에게 갑자기 느끼게 되었는지. 그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마치 가장 이상한 일이면서 동시에 가장 자연스러운 일을 수행하듯, 그녀의 아파트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저녁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왜 하필이면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이 사람의 외모나, 가치관, 사고방식들은 내가 꿈꿔왔던 이상형과 같지 않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사람의 눈이 어느 누구의 눈보다 예뻐 보이며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 크게 공감하는 바이다. 그 사람이 원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라면, 그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작가는 사랑의 시작을 자연스러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은 이유가 있지만,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의 어떤 부분이 바뀌어도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 잡았던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사랑의 자연스러운 시작의 과정이라고 했을 때, 그녀의 손이 조금 거칠어졌다고 하여 그녀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

 

사랑의 시작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자연스럽게 시작된 사랑으로 인하여 나는 이미 그 사람의 부분을 사랑하기보다는 전체를 사랑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작은 부분이 변하고 없어지더라도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변한 부분이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전체라는 덩어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라면? 결국은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많은 부분들에 대해 싫증이 나게 된다면?

 

무척 사랑했다.

 

사랑의 시작과 끝 사이의 과정은 일반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수 많은 연인이 각기 다른 사랑을 하고 있으며 각기 다른 사랑은 그 크기와 서로가 공유하는 것의 차이는 무척이나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와 어떤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며 어떤 달콤한 말을 주고받았든 간에 한마디로 둘은 '무척 사랑했다'라는 한마디의 말로 압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크기
나는 클로이가 나를 떠나도록 그녀를 사랑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사랑을 하지만 그 사랑의 크기는 같을 수 없다. 그렇기때문에 연인들은 흔히 말하는 밀당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 결과 한쪽의 일방적인 사랑의 크기에 짓눌려 상대방은 결국 질식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게 된다.

 

현재 우리사회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약자는 강자보다 훨씬 더 사랑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 이별 후에 얻게 되는 것이 강자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보다 위에 있고 싶고, 자신이 내키는 대로의 사랑을 하고 싶다면 강자가 돼라. 하지만 나는 나를 떠나도록 그 사람을 사랑하는 약자의 쪽을 택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후회 없이 마음껏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사랑을 아껴서 무엇하겠는가?

 

정의 안에 존재
나는 클로이가 전에 "내가 몇년 전에 만났던 그 남자 있잖아"하는 말을 듣고 갑자기 슬퍼진 적이 있다. 나 자신을 몇 년 후에 [참치 샐러드를 사이에 두고 그녀를 마주 보고 있을 다른 남자에게] "내가 얼마 전에 만났던 그 건축한다던 남자......"로 묘사하는 광경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과거의 연인에 대해서 무심코 던진 말 때문에 나는 불가피하게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현재 그녀에게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어떤 정의 ["남자", "남자 친구"]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현재는 사랑하는 이가 나의 전부일지라도 그 사랑이 끝나버리면 내가 사랑했던 이는 과거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말속에 잠식되어 버린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말 속에 몇 사람이 존재했는지, 그 사람들과 어떠한 사랑을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고를 정지하고 또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한다. 이에 작가는 '어떤 정의 안에 사랑하는 이가 존재하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현재 나는 너를 무척 사랑해 라는 말이 진실된 말이 아닐까? 그 사랑이 진정으로 영원한 사랑이 되면 좋겠지만, 만약 그 사람과의 인연이 끊어지게 되면 그 사람과 거닐었던 장소에 다른 이와 거닐게 될 것이고 또 다른 추억과 느낌으로 그 장소를 자연스레 바꾸게 될 것이다. 사랑에는 끝이 없다. 다른 사랑으로 대체될 뿐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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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2019.05.15 14:57 신고

    한눈에 잘 들어오는 리뷰 감사합니다!
    잘보고 가요
    자주 소통해요~
    구독하고 갑니다!!

    • 2019.05.15 17:27 신고

      부족한데 댓글 달아주시니 감사합니다 ㅎㅎ 티스토리도 이런 기능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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