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feat : 봄날의 벨벳의 곰)

고등학교때, 대학생때, 입사 후에 이어 네 번째로 이 책을 읽었다. 처음에 책을 읽었을 당시에는 내용보다는 단순히 하루키 특유의 분위기와 문체 그리고 처음으로 접했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 끌렸던 것 같다. 이전과 달리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주인공들의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확실히 나이를 먹었다고 느꼈다. 특히 나오코와 미도리, 레이코에 대한 와타나베의 한마디 한마디가 구구절절 와닿았다. 마음이 아프다는 감정 그리고 그것을 평생 품고 산다는 것, 상처라는것은 진작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부딪혀야 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며 회피해온 감정의 결과물인 것 같다.

 

미도리와 와타나베가 주고받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표현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내 마음대로 하는거야.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하는 것. 가령 지금 내가 자기에게 딸기 쇼트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말이야, 그러면 자기는 모든 걸 집어치우고 그걸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헐레벌떡 돌아와서 자, 미도리 딸기 쇼트 케이크야 하고 내밀겠지. 그러면 나는 흥, 이런 건 이젠 먹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그걸 창문으로 휙 내던지는 거야. 내가 바라는 건 그런거란 말이야. ...

봄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같이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똘망똘망한 새끼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 하겠어요?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곰은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나가사와가 와타나베에게 해주는 현실적인 조언
자신의 힘을 백 퍼센트 발휘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는 거야. 원하는 건 가지고, 원치 않는 건 받아들이질 않아.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막히면 막힌 곳에서 다시 생각해. 불공평한 사회란, 반대로 생각하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하지. 때때로 나는 이 세상을 둘러보면 정말 한심해져. 어째서 이 사람들은 노력을 안 할까, 왜 노력을 않고 불평만 할까 하고 말이야. 내가 말하는 노력이란 좀 더 주체적이고 목적을 가지고 하는 걸 말해. ...

자, 행운이 있기를, 여러 가지 일이 있겠지만 너도 상당히 고집스런 데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잘해 나가리라 믿어. 그런데 한가지 충고해도 될까? 자기 자신에게는 동정하지 말아.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와타나베의 하쓰미를 바라보고 느꼈던 감정
세계의 모든 것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내 손과 접시, 테이블에 이르기까지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온통 붉게 물들고 있었다. 마치 특수한 과즙을 머리끝에서부터 뒤집어쓴 것처럼 온통 선홍색 일색이었다. 그런 압도적인 석양 속에서 나는 문득 하쓰미 씨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그 때 그녀가 일으킨 내 마음의 소용돌이가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이해했다. 그것은 채워질 수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채워질 수 없을 소년기의 동경과도 같은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타오르는 순진 무구한 동경을 벌써 까마득한 옛날에 어딘가에 잊어버리고 왔기에, 그런 것이 한때 내 속에 존재했다는 것조차도 오랫동안 생각해 내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하쓰미씨가 뒤흔들어 놓은 것은 내 속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던 '나 자신의 일부' 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거의 울어버릴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내가 사는 현재와 이 책이 쓰여진 과거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아 신기했다. 어쩌면 나의 2~30대와 부모님의 2~30대가 느꼈던 감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수도 있다. 일본과 한국은 비슷한 문화권이기에 그런 것일까? 동아시아 문화권이 아닌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공감할 수 있을런지 궁금하다. 어떤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살아가더라도 가장 중요한것은 본인의 인생에 있어 뚜렷한 가치관을 세우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느꼈다. 한번뿐인 내 인생, 좀 더 뜨겁게 살고 싶다.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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